■ 출판사 리뷰
서쪽을 보다

최금녀


우리는 동쪽에 있다

남편은 늘 동쪽 벽에 기대어 앉아
서쪽 벽을 보고 있다

액자 속 인물들은 표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
40년 된 소철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반가운 적이 없는 기억들이
꽃 진 화분에서 기어 나와
틈새를 찾아다니며 핀다

르누아르의 여자는 그림 속에서도 르누아르를 사랑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죽음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정장 차림으로 날씨를 읽는다

서쪽 벽은 늘 춥고 어둡다
바라보는 중이다

달맞이꽃

최도선


구름에 가려진 달
그리며 짓무른 눈

칠월 상현上弦,
저 달빛도
가려질까
애가 달아

남몰래
허리 비단금
풀어 놓는
여린 손

이층 바다 교실

한이나


이층 교실 창가에 기대어 흰 운동장 너머
바라보면 남해바다 한쪽이 정답다
바다가 있는 교실 풍경
몇 걸음 내달리면 닿을 아름다운 거리
내 스무 살 시에 그린 꿈의 자화상 한 장

바다가 없는 곳이 고향인 나는 꿈의 바다 대신
상춧잎 같은 산골 처녀 선생이 되었다
들판에 들꽃 지천인 봄날 때 씻긴다고
우루루 줄지어 아이들 냇가로 몰고
지루해진 오후, 냉이꽃과 싸리나무와 종달새
그리려 자주 언덕에 올랐다

뽀뽀한다고 달겨들던 코찔찔이 1학년 철이랑
가난해도 의젓했던 화전민 반장 준이는
너른 세상바다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폐교로 만든 진도 시화박물관에서
다시 씀바귀 잎 같은 선생 노릇이나 해 볼까
이층 바다 교실 창가에서, 우두망찰
바다를 향해 온 맘 활짝 열어놓고
씌여지지 않은 시집을 읽는다

꿈의 전구 15촉에 반짝 불빛이 켜진다

■ 작가소개

지은이 : 시터 동인

■ 목 차

서문

최금녀
서쪽을 보다
멈추다
오장동
도라산 역
망향제단
고모
폼페이의 돌계단

최도선
달맞이꽃
11월에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복고풍은 새털처럼
유목의 시간
여인 1 –박수근의 귀로
황진이 마음

한이나
이층 바다 교실
저, 푸른 꽃
맹골 죽도 미역
밤의 피라미드
물빛 식탁
벌레가 질문하는 밤
아득한 묘법

황상순
영미네 백반집
낙화암
적막寂寞
말코 삼천지교
세 마리의 새가 있는 풍경
모란경經


노혜봉
유리 지바고의 시
이름 名
모시조개피리
꽃방
흐르는 물
바로크, 미지未知의 나라들
첫 봄맞이 진객珍客

신명옥
산책자
수정구슬 찾아 나선 아이
나의 아틸란티스
도마뱀 꼬리가 보이는 계곡
두물머리 강가에 있는 하얀 집
루페 속의 세상
워킹아이리스

신원철
향일암
동무동무 씨동무
봉선사에서
법고
밥상

심우도

윤경재
말아톤 울돌목
그리움의 양자역학
말복의 백색소음
변명
뛰어라, 반가사유
G D A E, 그대
사진 추억산방

이 명
소쩍새는 밤마다 바다 시 마을에 와서 운다
그리운 너울
곤줄박이 코드
개망초
마리골드
다기 일가
서종을 지나며

이미산
우리가 되기 위하여
2022년 5월 17일 밤의 단상
예쁨의 식성
할러데이
다녀가는 새벽비
창녀
아케론의 강

정영숙
모래그림
반쪽 심장
시집을 보내며
좋은 시절
마리아, 나의 어머니
그림자 무게를 줄이는 법
별오름